'달(月)의 성읍’, ‘종려나무의 성읍’, ‘향기의 성(城)’이란 뜻. 요단강 서쪽으로 약 8㎞, 사해 북쪽으로 약 11㎞, 그리고 예루살렘 북동쪽으로 약 23㎞ 지점에 위치한(수 2:1) 팔레스타인 최고(最古)의 성읍(민 22:1; 26:3). 요단 강 동쪽에서 지중해 연안의 블레셋 땅으로 나아가는 길목이자, 요단 강 서쪽의 넓고 비옥한 평원을 지키기 위한 경제·전략적 가치 때문에 B.C. 7천 년경에 이미 이곳에 성읍이 세워졌다고 한다(구약시대의 여리고, 신약 시대의 여리고, 오늘날의 소도시 등 몇 개의 여리고가 있는데, 각각은 서로 가까이에 있다). 이곳은 열대성 기후 지역 내에 있는 일종의 오아시스에 해당한다. 여리고는 지중해 수면보다 약 250m 낮았던 반면 예루살렘은 해발 약 790m였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급한 내리막길이었고 지형이 험하여 강도들의 출몰이 잦았다고 한다(눅 10:30).

성경에 언급된 여리고
종려나무가 많아 ‘종려의 성읍’이라 일컬어지는(신 34:3; 삿 1:16; 대하 28:15) 이곳은 가나안 정복 전쟁의 첫 대상지였다. 이스라엘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이곳을 이적적인 방법으로 탈취했다(수 2:1-3; 6:1-25; 히 11:31). 당시 인솔자였던 여호수아는 무너진 여리고를 재건하는 자는 저주를 받을 것이라 선언했으나(수 6:26), 분열 왕국 시대에 벧엘 사람 히엘이 이를 어기고 성을 건축하다가 첫째와 막내 아들을 잃었다(왕상 16:34). 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여리고는(수 18:12, 21), 겐 사람의 거주지가 되기도 했고(삿 1:16), 모압 왕 에글론이 점령하기도 했다(삼하 10:4-5).

한편 이곳은 선지자의 제자들이 거주하던 곳으로 엘리야 와 엘리사가 방문한 적이 있으며(왕하 2:4-22), 이스라엘 자손이 선지자 오뎃의 권면으로 이곳에서 유다 포로를 석방하기도 했고(대하 28:8-11, 15), 바벨론의  느부갓네살이 침공했을 때 예루살렘 성을 탈출해 나온 유다 왕 시드기야가 이곳에서 사로잡혔다(왕하 25:5; 렘 39:5). 또한 바벨론 포로   귀환 때는 이곳 출신자들이 돌아와 성벽을 재건하기도 했다(스 2:34; 느 3:2). 신약 시대에는 예수께서 여리고 성을 지나시다가 맹인 바디메오의 눈을 치료해주셨고(마 20:29-34), 세리장 삭개오를 만나기도 하셨으며(눅 19:1-2), 선한 사마리아인 비유의 배경으로 이곳을 언급하기도 하셨다(눅 10:30, 33).

출처 라이프성경사전


'좁은길 > 알기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감람산  (0) 2020.04.09
대속물  (0) 2020.04.08
대속물  (0) 2020.04.06
청지기  (0) 2020.04.04
데나리온  (0) 2020.04.03

+ Recent posts